게임 아트에 대해 말하는 일

아티스트 가운데 글을 쓰는 사람은 극도로 드물다. 때문에 이규호(@leegyuho)님 같은 분들이 게임 담론 지형에서 중요하다. 목소리가 없는 이들의 목소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프로그래머는 사정이 좀 낫다. 프로그래머는 블로깅이나 컨설턴트 주도 방법론 공유 문화라도 존재한다. 아티스트는 그렇지 않다.

“글을 쓴다”는 것은 단지 문장이나 문단을 만드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사고를 명료하게 다듬는 행위이고, 그것을 상대에게 분명히 전달하는 행위이다. 당연히 그 존재 양태에 따라 주체의 사고력과 권력의 결정체가 되기도 한다. 이 능력을 결여한 이들은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이들이다.

2016년 김범님의 NDC 강연 「콘셉트 아티스트를 위한 그림을 통한 소통 방법」을 듣고 내가 경악한 지점도 이와 연관된다. 기본 도형에 따라 캐릭터의 특징을 담아내는 건 이미 텍스트로든 암묵지로든 선대 아티스트들이 개척한 영역. 김범님이 그들에게 어떤 크레딧(credit)도 돌리지 않은 것은 지적 의무의 방기였다.

게임 아트와 미술

크리스 솔라스키(Chris Solarski)는 컴퓨터 애니메이션(Computer Animation)을 전공한 게임 아티스트로서, 게임 개발 분야에서 일을 하면서 고전 미술에 대한 관심을 갖고 이 둘을 연결하는 시도로서 『드로잉의 기초와 비디오 게임 아트』를 미국, 일본, 한국에 출간한 바 있다. 그의 주장은 단순하다. “비디오 게임은 고전 미술에서 자연스럽게 진화한 하나의 줄기로, 동일한 비주얼 요소와 기법 그리고 철학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현대의 게임 아트는 너무나 불만족스럽다. 그의 관점에서 대부분의 게임 개발자들은 “톨킨식 판타지와 블레이드 러너의 SF, 그리고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시각적으로 답습하는데 그쳤을 뿐”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사실주의에 사로잡혀 세부 묘사를 위해 백 만개의 폴리곤을 추가로 쏟아 붓는 것을 곧 예술적 진보라고 여기기도” 한다.

사실, 크리스 솔라스키의 주장은 너무도 당연하다. 디지털 아트나 게임 아트의 시각적인 표현이 인류의 미술사나 미적 감관과 완벽하게 격리된 채로 발전했다고 믿기는 너무도 어렵기 때문이다. 분명 디지털 미디어가 등장하기 이전에도 시각적 표현을 하는 예술가나 디자이너들은 존재했고, 다만 그들이 다루는 재료와 형식이 일부 변화했을 뿐이다. 하지만 해당 저서가 출간된 2015년은 물론 현재까지도 그의 주장은 파격적으로 들린다. 왜냐하면 게임 아트와 미술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명시적으로 언급하는 게임 아티스트들이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아티스트로 일한 적이 없기 때문에 아티스트들이 업무에서 어떤 정보를 공유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책이나 웹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찾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나는 현재 아티스트가 아니고 게임 아티스트는 더욱 아니다. 하지만 나는 미국에서는 2012년, 한국에서는 2015년에 출간된 저서의 이야기가 2018년에도, 그 이후에도 늘상 새롭게 들리는 공간은 결코 원하지 않는다. 그 “새로움(freshness)”이란 게임과 게임 아트에 대한 담론이 얼마나 정체되어 있는가를 매년 증명하는 감각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여기에 굳이 게임 아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 더 얹는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거슬러 올라가자면 NDC 2016에서 김범님의 강연을 듣고 나오는 와중에 해당 강연이 ‘얼마나 멋진 강연인가’를 강변하는 누군가와 논쟁을 벌인 사건에 있다. 당시 논쟁을 벌인 상대방이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게임이나 게임 아트에 대해서도 연구 윤리 등의 더 높은 기준이 요구되어야 한다고 믿었을 뿐이다.

나는 옛날 게임 잡지에서 독자 투고란을 읽는 일이 즐겁다. 그들은 돈을 받고 글을 쓰는 사람도 아니지만, 그들이 게임에 대한 글을 쓰게 된 동기는 게임에 대한 사랑에 다름 아니며, 그들의 진지함조차 귀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게임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나는 더 많은 게이머들이 각자가 서 있는 자리에서 쓴 글을 읽고 싶다. 그렇기에 또 다시 게임에 대한 글을 쓰고 여기 이렇게 끝을 맺는다.

참고 자료

  1. 크리스 솔라스키, 『드로잉의 기초와 비디오 게임 아트』 (프리렉, 2015)
  2. 김범, 「콘셉트 아티스트를 위한 그림을 통한 소통 방법」 (Nexon Official Channel,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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