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글은 과거의 박성국이 쓴 글이며, 현재 게임에 대한 박성국의 의견은 이와는 다를 수 있다.

게임에 대한 선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게임을 사유하는 것이 가능한가. 그것이 문제다. 과연 시중에 널린 게임들을 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지? Interactive Art는 게임이 아니다. Cinematography는 게임학이 아니다. 게임 실무는 게임학이아니다. 게임을 만드는 그 자리에 게임은 없다. 시간과 자본은 흐르고 그것을 붙잡기 위한 노력은 결국 문학이나 영화의 서사 구조를 빌려 비지니스 모델들을 조합해 게임을 출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Naughty Dog의 가게임의 가장 핵심적인 진보를 이뤄낸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영화의 구조와 연출을 빌린 상호작용 서사(Interactive Narrative)를 게임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아닐까? Valve는 분명 이에 대한 고민을 해왔지만 그 결과는?결국 게임이라고 부르는 경험이 게임에 대한 정의를 대체하는 것이 내가 당면한 현실이다. 물론 여기엔 진실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게임을(혹은 게임 아트를) 만들고 싶어'라고 말할 때 게임과 게임 아트는 귀납적으로 추출된 클리셰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특히 게임 아트는 원화에 한정할 때 르네상스와 바로크에 걸친 리얼리즘 회화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여기서 게임이라는 미디어의 비주류로서의 혁명적 이미지는 퇴색한다. 이때 게임은 기존의 새로울 것이 없는 것들을 모은 흥행 사업에 지나지 않는다. 무한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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