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은 나의 2018년에 대한 회고(回顧)가 아닌 포스트모텀(Postmortem)이다.

회고는 “뒤를 돌아다봄”, 그리고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함”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나는 2018년에 대해 그저 돌아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2018년을 평가하고 분석해야만 했다. 그래야 내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환경을 만들고, 내가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근자에 회고를 올리시는 분들은 이 단어에 “반성”이라는 의미를 더하셨겠지만, 나는 “분석”이라는 현재 행위의 강조하고 게임 개발에서의 포스트모텀과 연관됨으로써 이 행위의 주제를 더 한정시키고 싶었다. 왜냐하면 내 삶은 게임을 만들기 위한 삶이지, 나의 행복을 위한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게임 개발 또는 게임 담론과 관계된 일이고 게임 개발과 나의 삶은 하나가 되어야 한다.

우선, 나는 이전까지는 한 해를 평가하고 분석하는 활동을 하고 그 기록을 정식으로 남겨본 적이 없기 때문에 2016년 겨울의 게임잼(game jam) 얘기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그 게임잼의 시작이 2018년 11월 30일까지의 게임 개발 경험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게임 디자인(game design)에 대한 얘기다.

초기 게임잼 (Dec 9, 2016 ~ July 9, 2017)

첫 번째 게임잼

나의 첫 번째 게임잼은 「제2회 G-NEXT GAMEJAM」이었다. 2015년 8월부터 프로그래머로 입사해 게임 개발 경험을 쌓던 나는, 당시 게임 개발과 게임 디자인 경험을 쌓기 위해서는 반드시 게임잼을 해야 한다고 믿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하지만 한 번도 프로젝트를 기술적으로 이끄는 역할을 한 적이 없었기에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인디 게임 개발에 매진하던 곽창건님이 리드를 맡아주시는 덕에 큰 무리 없이 게임잼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게임의 아이디어는 회의 중 내가 냈고, 러닝 게임(running game) 장르에서 출발해 거대한 몬스터가 추적해오는 레이드(raid) 요소까지 염두에 둔 게임이었지만 한정된 시간과 자원 때문에 실망스러운 빌드(build)에 그쳤다. 그때부터 초기의 아이디어 내지 게임 디자인을 축소시키는 결정의 위험성을 인지하게 되었다.

제약으로부터의 배움

이후, 나는 다시 한번 기술적으로 개발 팀을 이끄는 역할을 하고 싶었고 또 이전 게임의 아쉬움도 만회하고 싶었기 때문에 다음 기회를 기다렸다. 마침, 괴테 인스티투트와 독일 게임 개발사 마쉬넨-멘쉬(Maschinen-Mensch)가 주관한 「게임잼: 예술, 정치 디지털 게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참여 자체의 경쟁이 다소 치열했던 것으로 아는데,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선정하다 보니 운이 좋게 선정되었던 것 같다. 해당 게임잼에서는 “Utopia”을 소재로 미디어 아티스트 신기헌님과 함께 「49/51」을 개발했다. 마침 신기헌님이 당시 내게 생소했던 AR 스마트폰인 Google Tango를 가지고 계셔서, 거기에서 출발해 바로 Unity Tango SDK를 도입해 간단한 AR 게임을 만들 수 있었다. 지금 평가해보면, 당시 Tango라는 기술적 제약(constraint)이 게임의 형태롤 구체화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기술로부터의 배움

반 년 뒤, 나는 Turtle Cream의 박선용님의 초대로 주한독일문화원, 주한프랑스대사관과 서울대학교 정보문화학이 공동 주최한 「게임잼: “MIND ‹RE› SET”: 이주와 통합에 대한 디지털적 접근」에 참여하게 되었다. 당시 내가 협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컸고, 이번에는 내가 제멋대로 프로그래밍에만 집중하고 싶어 「Hell-like: Survivor’s Journal in South Korea」를 홀로 완성했다. 주어진 시간 동안 적어도 기술 데모라도 만들고 가자는 식으로 시작을 했는데, 라이언 왓킨스(Ryan Watkins)의 『Procedural Content Generation for Unity Game Development』의 소스 코드(source code)를 모딩(modding)한 정도로 마무리가 되었다. 지금 평가해보면, 당시 게임 디자인에 대한 욕심이 거의 없었던 것에 비해 게임플레이(gameplay)에 대해 몇 가지 교훈을 얻었다. 우선, 아주 간단하고 뻔한 디자인이라도 플레이어를 미치게 만들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모딩과 같은 일부 디자인의 변경을 통해서도 게임 디자인을 배울 수 있다는 것.

일주일 게임 하나 (July 30, 2017 ~ July 11, 2018)

처음이자 마지막: 작심 일주일 게임 하나

일주일에 게임 하나 (Game A Week)는 라미 이스메일(Rami Ismail)이 주창한 게임 개발 경험과 능력을 배양하는 방법론이다. 「Downwell」을 만든 Moppin 역시 해당 방법론을 따라 매주 게임을 하나씩 만드는 과정에서 「Downwell」의 프로토타입(prototype)을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나는 당시에도 회사에서 상용 게임을 개발 중이었지만, 회사 업무 외에 남는 시간을 투자할 생각으로 Gamasutra에 실린 라미 이스메일의 글을 번역한 뒤 이에 방법론에 근거한 게임잼을 열었다. 하지만 우습게도, 직전의 게임잼에서 만난 친구인 Ralf Van Der Fjelde의 참여에도 불구하고 해당 게임잼은 단 일 회에 그치고 말았다. 당시 일주일 게임 하나를 실제 회사 업무와 병행하게 되는 순간의 스트레스 때문에 그만 두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주일 게임 하나의 부활

그 후 약 10개월 뒤, 정확히는 280일 뒤 나는 2018년 4월 30일에 일주일 게임 하나를 재개하게 된다. 당시 나는 동료들과 「게임 비평」이란 모임에서 게임의 역사 관련 서적들을 읽는 활동을 하고 있었다. 옛 게임들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나는 아주 간단한 형태의 게임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 정도면 일주일 안에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일주일 게임 하나를 재개했다. 이전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단 하루 또는 이틀만 주어지더라도 게임을 만들면 된다는 식의 새로운 태도를 지향했다. 회사 업무의 경우 주중에 집중하지 않으면 제대로 진도를 내기 어려우니, 주말만을 활용해 만들 수 있는 규모의 게임을 만들게 된 것이다. 이후로는 10주 동안 게임을 거르는 일이 없이 게임을 만들게 되었고, 그 중간에는 「9.G-HUB 네트워킹 파티 : ‘겜덕’들을 위한 인디게임 Show & Talk!」라는 행사에서 우연히 발표까지 하게 되었다.

일주일 게임 하나 (Game A Week), 9.G-HUB 네트워킹 파티 발표 자료 from Sungkuk Park

게임 메이킹 실험실

일주일 게임 하나를 지속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실제로 주중에는 개인 프로젝트에 손을 댈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더 어려운 것은 일주일 게임 하나를 지속할 동기(motivation)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트위터 계정(일주게하)를 통해 홍보를 해봐도 나와 같이 일주일 게임 하나를 지속할 동료를 구하는 것도 어려웠고, 주말마다 일주일에 단 하루도 쉬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요일 자정이라는 마감이 다가오는 압박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게임 만들기를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융합예술센터 아트게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된 「게임메이킹 실험실 (Game Making Lab)」과 김영주님 덕분이었다. Unity라는 단일한 게임 엔진에서 반복 작업에 지쳐있었을 때 대안 게임을 가능성을 목표로 제작된 여러 종류의 작은 게임 엔진들은 각각이 일종의 제약으로서 내가 새로운 게임들을 만드는데 영감을 주었다.

출시, 후기 게임잼 (July 25, 2018 ~ Nov 30, 2018)

나는 2015년 8월부터 개인 프로젝트 이외의 대부분의 시간은 「판타지 레이더스 (Fantasy Raiders)」라는 게임의 개발에 투자했다. 하지만 7월 25일의 얼리 액세스(Early Access) 이후 매출 성적이 좋지 않았고, 나는 이후 일곱 차례의 패치를 개발하는 작업을 마친 뒤 현재는 추가적인 개발 일정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출시 이후 패치 작업 와중에도 나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관하는 「놀이, 이토록 창의로운 Imagine, Play」에 별도로 시간을 투자해 「HYSTERIA」의 초기 빌드를 완성했다. 팀을 구성하고 게임 디자인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예상보다 오래 걸리긴 했지만, 업무를 수행하고 남는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해 초기에 기대했던 것 이상의 빌드를 얻어낼 수 있었다. 특히, 각 팀원이 이미 완성된 수준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의 게임잼은 처음이라, 다른 팀원분들에게 각 전문성이 빌드에 기여하는 과정을 직접 관찰할 수 있었다.

구직 활동 (Sep 22 ~ Present)

매버릭게임즈와의 고용 계약이 종료되었기 때문에, 나는 「HYSTERIA」를 완성하고 국내 기업 일부에 입사지원서를 제출한 직후부터 본격적인 구직 활동에 돌입했다. 그 이후로 구직 활동은 이제 막 3개월이 넘었고, 짧은 시간 동안 많은 회사들과 면접을 진행하고 일부는 현재도 채용 프로세스가 진행 중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4년 만에 최대의 고통을 겪었지만 그만큼 단기간에 많은 것들을 새로 배울 수 있었다. 우선, 이직 준비는 최소 3개월 전부터 미리 시작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나는 일반적인 한국 게임 회사의 “공채” 프로세스를 통과하기에는 여러 불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는 점. 이는 물론 일부는 내 문제 해결 능력의 일부의 결핍에도 비롯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다수의 지원자를 걸러내야 하는 프로세스에 내가 적합하게 훈련받지 않았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특히 국내 대기업들의 입사 문턱에서 떨어진 이후, 절대로 구직할 때는 자존심까지 버려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경로로 취업하는 것이 내게 이득이 된다고 해서, 굳이 남의 말을 듣고 내가 옳다고 믿지 않는 방향으로 갈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 방향으로 가다 실패하면 더 비참했다. 여하튼 초기에 비해 현재는 구직 활동 자체를 즐기는 중이다. 무엇보다 프로그래밍을 처음 배우던 시절로 돌아가 대부분의 시간을 학습에 투자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마무리

위에서 논했던 것처럼, 나는 2016년을 시작으로 2018년의 끝자락까지 게임잼과 함께 성장했다. 비록 마지막 3개월은 내가 만족할 만큼 게임 개발에 매진할 수는 없었지만, 내가 구직 과정에서 쌓게 된 경험과 채용 프로세스에서 요구되는 능력을 쌓는 모든 과정이 내가 더 좋은 게임 개발자로 성장하는데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하다. 이 기회에 모든 면접관분들께 감사드린다. 채용 결과가 안 좋다면 내가 부족하거나 적합하지 않은 게 맞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새로운 게임을 만드는 기회를 남들에게 앞서 부여받은 것은 새로운 게임을 만드는데 관심을 가진 여러 게이머(gamer)들의 초대 덕분이었다. 박선용님께 감사드리고, 김영주님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매버릭게임즈 식구들에게도 감사드린다. 덕분에 내가 2018년 말까지 게임을 개발하며 그 과정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

최근 3개월 동안 나는 개발 관련 도서 이외에 영화도, 게임도, 애니메이션도, 만화도 아무 것도 내 머릿속에 입력하지 않았다. 그나마 게임 디자인 관련 도서를 최근에 읽기 시작한 것이 전부다. 구직 활동의 영향도 있지만, 나는 현재가 내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관심사들 가운데 하나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라고 믿기 때문에 그렇다. 나는 지적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고, 그 호기심을 충족할 능력이 있고, 게임이나 서브컬처와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다. 하지만 나는 나머지 관심사 모두를 포기하더라도 게임 개발에 있어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내가 한 명의 게임 프로그래머로서 인정을 받는 것이 그 시작이다. 그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현재 별로 산만한 점(distraction)은 없다.

나는 이전의 반복보다 더 나은 게임을 만들 것이다.

<끝>